🤴2020년 개발자 회고록
굉장히 빠르게 지나갔던 나의 2020년, 베트남에서 프로그래밍 강사로 활약했던 1년의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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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빠르게 지나갔던 나의 2020년, 베트남에서 프로그래밍 강사로 활약했던 1년의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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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활동으로만 했던 멋쟁이사자처럼에 영리법인 직원으로 입사를 하게 되었다.
운명적인 시작이었던 멋쟁이사자처럼 베트남 사업부에서의 생활이 코로나가 극심했던 이번 2020년에 굉장히 많은 영감과 내 삶의 방향성에 대해 길을 제시했다.
베트남에서 IT 기업들은 대부분 싱가폴, 말레이시아 출신 기업들이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고 (Grab 등) 토종 기업들은 주로 Vin Group 등이 자리를 잡고 있지만, 우리나라 제조업처럼 IT 기업으로 변화를 빠르게 추구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11월에 베트남 사업부 직원 뽑을 때 내가 지원한 것 자체가 운명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이 시국에 내가 베트남에 와서 해외 근무라는 것을 해볼 수 있었으며, 한국처럼 이동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 있지 않고, 해외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겠는가?
2020년에 베트남에 있던 것은 내게 큰 축복이자 행운이다.
솔직히 누가 예상했을까? 2월에 코로나 터지고 팬데믹 되었을 때, 사업부 운영해 나가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일 줄은... 회사 대표님들도 베트남에 쉽게 오고갈 상황이 아니게 되었고, 당시 현지 인맥을 통한 시장 조사를 위한 목적으로 진행했던 한국인 유료 클래스도 온라인으로 강제 전환하게 되었다.
처음에 한국인 클래스 오픈했을 때, 걱정이 많았다. 학생들 대상으로 수업 경험은 있었지만, 직장인들, 유료 클래스 사람들을 대상으로 내가 잘 교육할 수 있을까? 질의 응답에 잘 답변할 수 있을까? 에 대한 부분들이다.
그러나 막상 수업을 뛰어보니,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역시 "코로나"라는 변수는 사업부에 있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여러가지 일들을 발생하게 있다.
가장 큰 이슈는 2020년 4월, 베트남 정부 Ha Noi, Ho Chi Minh, Da Nang 등 대도시를 3주 동안 봉쇄하는 행정 명령을 지시한다.
덕분에 Grab, 대중교통, 유흥 주점 및 식당, 그리고 10인 이상이 모일 수 있는 모든 시설이 봉쇄된다.
입주 계약을 맺었던 Publik Office 도 3주 동안 강제 봉쇄로 자택 근무를 하게 되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따져봤자 무의미했다. 왜냐고? 베트남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정부 지침이나 말에 순응하기 때문에, 몰래 오피스를 열어줘서 근무하거나 하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수강생들을 도대체 뭘로 교육하냐? 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졌고, Zoom을 활용해서 수강생들을 교육하는 일들을 진행하게 되었다.
마지막 해커톤 전에 봉쇄 명령은 끝났고, 해커톤만은 결국 오프라인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코로나라는 불가항력적인 변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업에 영향을 줬을지... 짐작할 수가 없다.
부트캠프, 온라인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느라 정신 없었다. 선진국에서 그런 것처럼 프로그래밍 교육 업체들은 대다수가 부트캠프를 운영하는데, 우리도 베트남에서 이것을 운영해보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잘 안되었다.
교육 사업체로써 해볼 수 있는 모든 사업을 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만, 마찬가지로 "코로나"로 직장을 잃고 지갑이 얇아진 사람들이 많았고, 대다수의 베트남 사람들이 부트캠프 비용을 충당할 정도의 소득이 안되었던 것도 문제였다.
멋쟁이사자처럼이 대학을 베이스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처럼, 베트남에서도 대학 멋사를 운영하기 위한 준비등을 했다.
코로나가 항상 발목을 잡았고, 4월 이후 8월, 11월에 코로나 확진자가 재발하면서 대학 측에서 오프라인으로 학생들을 모으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냈다.
2, 3분기는 정말 고통스러웠다. 하고 싶던 모든 시도를 다 해봤지만, 결과가 안나오니 너무 답답했다.
온라인 강의 수업 운영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베트남 내에서 상당히 반응이 좋았고, 무엇보다 높은 퀄리티에 가격 경쟁력이 있으니, 사람들이 높은 효율로 반응했던 것 같다.
베트남에서 광고 플랫폼은 페이스북만 활용했다. 그도 그럴 것이 페이스북이 베트남 SNS를 다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라이브 스트리밍도 다 페북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결과는 12월 말에 가봐야 알겠지만, 왠지 수업이 잘 운영될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든다.
분명 프로그래밍에 대해 수요가 있는데, 소득 요건 등이 수업을 들을만한 여력이 안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업에 있어 구매자들의 구매력을 적절히 맞춰주는 것도 분명히 중요한 요소다.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늘 그때 그때의 최적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라고 나는 답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베트남인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프로그래밍 교육 기획, 한국인 멋쟁이사자처럼 직장인, 베트남인 대상 부트캠프, 네이버 커넥트 재단 교육 사업 준비, 온라인 프로그래밍 교육 사업 준비 등 사실상 사업을 위해 필요한 다양한 준비들을 미친듯이 찾아다니며 진행했었다.
개인적으로 학생 때 친구들과 함께했던 스타트업은 놀이나 다름 없었다.
성과나 수익에 매말랐고, 정부 지원금에 의지하지 않은 채, 회사의 자본을 갖고 진행했기 때문에 매 순간 순간이 적절한 비용을 투입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사람을 채용하는 프로세스도 진절머리나게 겪었다.
특히 베트남 사람들은 본인하고 안맞는 것 같다 싶으면 3일 일하고 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덕분에 초반에 사람을 채용하면, 반드시 해야하는 일들을 이해했는데, 바로 회사 소개와 근무 규칙 등에 대한 안내다.
회사 프로세스를 이해 못하니 채용한 사람들이 엉뚱한 행동을 하면 바로잡아줄 규칙을 처음부터 명확하게 설명하고 넘어갔었어야했다.
갖고 있지 못한 것 때문에 발만 동동 구를 수는 없었고, 늘 갖고 있는 것에서 최적해를 찾기 위한 방법을 찾아다녔던 것이 스타트업에서의 1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만들었던 것 같다.
파이썬, Django만 거의 특화된 상태로 코딩했었는데, 지난 1년 동안 JS를 다룰 일이 정말 많았고, 사실 반 년 동안은 Python, 나머지 반 년은 JS를 다루는데 주력했다.
처음에 나 혼자 베트남 팀에 있을 때, 커리큘럼을 주위에 물어볼 곳이 없어 답답했다. 현업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귀찮게 구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검수해줄 사람이 없는 것은 제한 시간 내에 내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항상 스스로 재촉하는 마음을 만들었던 것 같다.
그 우려만큼 업무 외적으로 정말 많이 공부했고, 프로젝트 경험을 쌓으려 노력했다. 덕분에 Django라던가 Python 실력이 월등해졌고, 아키텍쳐 부분까진 아니지만, 코드를 보고 구조를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는 단계까지 온 것 같았다.
추후에 입사해서 함께 강의를 운영하고, 수강생들과 수업을 함께했던 파견팀원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던 것 같다.
프로그래밍 강사는 지식을 전달해야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기초적인 지식들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수강생들이 헷갈리지 않는다.
수강생 코드를 봐주고 나서야 "내 코드를 짜고 싶다"라는 것에 대해 욕구를 느꼈다. 수강생들은 각자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것이 명확하게 존재한다. 내가 짜고 싶은 코드란 무엇일까? 단순히 취업을 위한 코드를 짜는 것이라면 내가 개발을 배운 것에 의미가 없다.
강사였지만, 그 누구보다 성장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것 같다. 수강생의 생각을 코드로 옮기는 일은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코드를 배우는 것도 사람을 만나기 위해 배우는 것이다. 코드를 왜 짜는지, 그리고 왜 서비스를 만드는지, 그 본질을 이해해야한다. 개발자라는 직업은 그 누구보다 사람을 많이 대해야하는 업종이다.
사진만 봐도 알겠지만, 정말 재밌었다. 특히 4월 코로나 봉쇄 해제 조치 이후, 베트남은 코로나 모범 방역국이어서 거의 코로나와 분리된 별개의 세상이었다.
한국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여행지인 무이네(Muine), 푸꿕(Phu Quoc), 달랏(Dalat, 2021년 1월 말 여행 예)을 다녀왔다.
아, 다른 세상이다. 여행지 물가가 이렇게 저렴할 수가 없다. 너무 재밌다. 베트남 최고...😉
개인적으로 개발자 커뮤니티나 인프라가 잘 안갖춰진 것만 제외하면 모든 게 최고인 나라다.
이 나라에 개발자를 위한 정책이나 네트워크가 보편화되는 날이 오면 아마 내가 살기에 최적의 국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열심히 잘 쓰던 medium의 내 블로그가 접속이 안된다.
베트남에서도 문제 없이 잘 접근되던 페이지가 무슨 연유인지 접속이 안된지 약 2달이 되었고, 결국 참다 참다 GitBook에 새로 페이지를 만들게 되었다.
아니 도대체 미디움 블로그에 무슨 일이 있던 것인가?
오히려 잘됐다. 2021년에 이번 기회를 전화위복 삼아서, GitBook에 한 번 책을 엮어보자.
사람의 가치는 마치 자과 같다. 스스로의 가치가 매일 똑같다고 느끼면, 사실상 후퇴하고 있는 것과 다름 없다. 자신의 가치는 매일같이 꾸준히 올려야하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공언하고 다녔다. 30살까지 스탠포드 인공지능 대학원을 갈 것이라고. 30살까지 더 높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나는 어떤 방향성을 갖고 실행하고 있는지 꾸준히 물어봐야한다.
너무나 많은 기회들이 세상에 퍼져 있다. 이 기회들을 어떻게 선으로 연결해서 내게 오도록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실행하는 태도를 가져야한다.
이제 코딩을 위한 학습은 충분하다. 프로젝트 경험 중심으로 학습하자.
잠을 조금만 더 줄이자. 나는 잠을 못자는 게 문제가 아니라, 너무 잘자서 문제다.
Udacity, Coursera 등에 좋은 퀄리티의 강의들이 많다. 한국에서 나도 충분히 전문가가 될 수 있다.
Nano Degree, 학위 인정 제도들이 잘 갖춰져 있어서 인공지능 분야의 내 전문 분야의 기초를 이 강의 플랫폼을 활용해 쌓을 수 있을 것 같다.
2021 OSS 전문 개발자,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2개를 지원하자. 지금보다 나는 더 잘할 수 있다.
내가 가고 싶은 방향성에 필요한 것들은 이미 세상에 정말 많이 갖춰져 있다. 주어진 조건들을 활용 못하면 바보다.
학교 선배이자, 공동 대표로 계신 분이 나를 채용했고, 여러가지로 사업적인 부분에서 내가 많은 지도와 가르침을 주셨다.
개인적으로 정말 존경스럽다. 사람 채용해서 필요한 부분에 적재적소로 쓰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적 자원을 관리하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멋사 직원이 30명 가까이 되는 것을 감안하면, 커져가는 조직과 기업에서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항상 회사에 대해 고민한다는 얘기와 같다.
한국에서만 머무르고 살 것이라 생각하지말자. 이번 베트남 근무 경험은 나 스스로를 글로벌 패치(Global Patch) 시키는 일환이었다. 삼성이 전세계로 나와 성공할 수 있던 것처럼 나도 이렇게 될 수 있다.